삶의 의미를 찾아서 – 저자: 김영진
- pastortkim
- May 12, 2016
- 6 min read
삶의 의미를 찾아서 – 저자: 김영진
Taylor Kim
“전도서는 행복과 성공이 사람의 행동에 달려 있다는 전통적인 지혜와는 달리 하나님 없는 삶에 대한 회의론을 제기한다. 그렇다고 전도서가 부정적인 책은 아니다. 전도자의 결론이 언뜻 보기에는 부정적이고 절망적이지만 궁극적으로 하나님만이 모든 사물의 의미를 아신다는 것을 독자들에게 알리고자 한다. 따라서 전도서는 가치 있는 삶은 하나님을 인정하는 삶임을 강조한다.” – pp. 20
전도서는 “코헬렛” 이라는 히브리어를 오역하면서 만들어진 이름으로, 지혜가 의인화 되어 사람들에게 어떠한 삶이 진정으로 지혜로운 삶인지를 이야기 하고 있는 책이다. 특별히 전도서는 기존 고대 근동에서 발달하던 전통적인 지혜와는 다르게 오직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삶만이 가치 있고 지혜롭게 살아가는 삶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1:1-3:15 에 해당하는 전도서의 도입 부분을 읽어보면 단순히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 모두 헛되고 허무한 것들이라고만 이야기 하고 있는 것 같지만, 결국 전도서 신학의 핵심은 하나님의 개입하심이 없는 모든 일은 허무하며 하나님을 인정할 때 모든 행복과 성공이 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즉, 전도서는 “허무”라는 중심 주제를 시작으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과 전지전능하심을 선포하는 책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OECD 국가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가장 높은 자살율을 보유하고 있는 대한민국을 생각할 때에 그들로 하여금 세상을 등지고 죽음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들이 두 손에 쥐고 싶었고, 또 갖고 싶던 것을 갖고 나서도 그들의 마음을 채우지 못했던 이유가 무엇인지, 어쩌면 바로 전도서 안에 그 해답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혜운동은 이스라엘 주변의 선진국에서 발달했고, 솔로몬이 수입한 점을 생각하면, 지혜운동의 본고장이었던 애굽의 지혜보다도 솔로몬의 지혜가 뛰어나다는 평가는 대단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열왕기상 4:34는 이미 솔로몬 시대부터 국경을 넘어선 학문적 교류가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 pp. 36
“삶의 의미를 찾아서” 를 읽으며 흥미로웠던 부분 중에 하나는 지혜가 이스라엘 주변의 선진국에서 발달하기 시작하였고, 그것이 학문적 교류로 이스라엘에 들어오며, 이스라엘 신앙으로 동화되어갔다는 내용이었다.
고대 근동 세계에서 지혜는 인간의 이성적, 지적인 활동의 산물이지만 이스라엘의 신앙 안에서 지혜는 이성의 힘으로 찾아내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지혜는 바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시는 것이고, 또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선물인 것이다.
우리는 지혜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사람으로 솔로몬을 생각할 것이다. 성경에서도 그는 가장 지혜로운 사람으로 설명되어 지고 있다.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지혜를 가지고 태어난 것은 아니었다. 그가 하나님께 구했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바로 지혜였다. 즉 지혜는 사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처음부터 가지고 있는 것이 될 수 없다. 지혜는 하나님께로부터 와야 하는데,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지혜를 받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란 단순히 머리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고 그 말씀에 순종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단순한 두려움의 차원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고 지키는 것이 된다.
“전도자는 전도서 독자들에게 허무주의를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과 함께하지 않는 모든 일의 헛됨을 강조함으로써 임마누엘의 하나님 중심 사상을 강조한다.” – pp. 55
전도서 1장은 지혜문학의 가장 중요한 표현 기법 중에 하나인 전형적인 질문과 대답의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느끼고 경험하는 것과 같이, 때로는 어떤 것을 위해 우리의 모든 것을 쏟아부어 보지만 시간이 지나 돌이켜 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가치 없는 일일 때가 종종 있다. 또 어쩌면 그것은 우리의 삶 전반에 걸쳐 있는 문제일 수 있다.
전도자는 1장에서, 인간은 모든 피조물들 중에 가장 유한한 존재이며, 그 욕망으로 인해서 만족할 줄을 모른다고 이야기 한다. 왕과 같이 모든 권세와 재물을 얻게 된다고 할지라도 가장 중요한 것이 그 삶을 채우지 못할 때 인간은 여전히 갈급하고 외로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전도자는 자신을 솔로몬 왕과 동일시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하나님과도 동일시한다.” – pp.70
“사람이 죽으면 그가 자신을 위하여 행했던 모든 것을 다음 세대에 물려주어야 하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이 무익하다.” – pp. 75
전도자는 2장에서도 그가 많은 것을 얻었고 이루었지만, 결국 모든 것이 허무했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살고 있는 이 삶이 나그네와 같이 짧게 지나가는 것임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의 원하는 것을 취하고자 하고, 더 안락한 삶을 찾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우리의 생명이 끝나는 순간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다. 모든 삶의 순간 순간 마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유와, 지금 하고 있는 일의 목적이 제대로 서지 않을 때에 우리는 우리의 가야할 방향을 상실하고 말 것이다.
“전도서만이 구약성경에서 유일하게 사람이 죽으면 영이 위로 올라간다고 이해한다. 전도서를 제외한 모든 구약성경에서는 사람은 죽으면 스올로 내려간다고 이해하였다. 이러한 생각은 그리스 종교에서 발견된다.” – pp. 90
전도서 3장에서는 인생의 모든 일에는 때가 있기 때문에 아무리 그 일을 이루려고 노력해도 소용이 없음을 말하며 오직 하나님만이 그 일을 이루어주신다고 이야기 한다. 전도자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 하신 것이나, 하나님께서 행하신 여러가지 일을 이야기 하며 그것들을 인간이 결코 이해할 수 없다고 이야기 한다.
세상에는 참으로 인간의 머리나 과학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창조를 차치하고서라도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의 존재 자체도 인간의 언어와 과학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오랜 과거부터 현재까지 하나님의 존재를 입증하려는 시도와,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시도는 계속해서 이어져 왔고, 예수님이 다시 오시기 전까지는 끝나지 않을 싸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을 모두 이해하려는 노력보다,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맞추어 살아갈 때 소중하고 가치 있는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전도자는 산 자나 죽은 자보다 더 복된 자는 아예 태어나지 않아 악을 보지 않은 사람이라고 말함으로써 인간 사회의 죄악상을 강조하고 있다.” – pp. 92
“수고하여 쌓아놓은 부를 함께 즐길 다른 사람이 없기 때문에 애쓰고 노력하는 삶의 무의미함을 말함으로써 더불어 살아감의 유익함을 강조하고 있다.” – pp. 95
인간의 죄가 얼마나 지독하고 심했으면, 전도서 4장에서는 살아 있거나 죽은 사람보다 아예 태어나지 않은 사람이 복이 있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어쩌면 노아 시대 때나 소돔과 고모라의 시대보다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이 세상이 더 더럽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교회는 더 이상 종교 공동체가 아닌 기업으로 바라보고, 목사는 더 이상 존경의 대상이 아닌 탈세나 범죄의 주요 인물로 생각되어지는 세상에서, 우리는 세상이 이야기하는 부나 명예가 아닌,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살아갈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할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음.” – pp. 101
“하나님 앞에서 무엇을 행하려 하는 것보다 더 소중한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 pp. 105
전도서 5장과 6장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거나 사역을 하다보면, 어느새 일하는 것에 정신이 팔려 정작 그 중심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하지만 전도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예배 드리는 자리로 나아갈 때에나, 하나님께 기도할 때 더 신중하고 경건해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여전히 나에게도 그런 모습이 남아 있겠지만,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가 아닌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협상의 자리가 되곤 한다. 그리고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것을 얻은 후에 하나님께 약속 드렸던 내용들은 쉽사리 잊혀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나의 이야기를 하나님께 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역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다. 또 그것을 위해서 우리는 말씀 묵상에 힘써야 한다. 그것이 어떤 프로그램이 되었든지 간에 말씀이 중심에 서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온전히 깨달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생명을 얻게 하지만 세상의 근심은 사망에 이르게 한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마음이 편하지만 세상의 근심은 마음이 불편하다.” – pp. 126
전도자는 7장과 8장을 통해서 선과 악 앞에 인간이 얼마나 무능력한 존재인지를 다시 보여준다. 우리가 언제나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기를 소망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루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죄를 지으며 살아가는 것을 볼 때, 사람에게 선과 악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아는 것처럼 행동하지 말 것을 가르치는 지혜자의 말은 나의 교만함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하나님의 손 안에 있으니 는 하나님께서 모든 일의 자세한 것까지 미리 결정하셨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의 모든 것을 통치하신다 는 의미이다.” – pp. 148
“우리가 세상에 은혜와 기쁨을 줄 수 있으려면 지혜자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 지혜의 근원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에 있다. 궁극적으로 은혜로운 말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고, 죽은 생명을 살리는 복음을 전하는 자가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자이다.” – pp. 160
지혜자는 다시 한번 9장과 10장을 통해서 지혜의 가장 핵심적인 원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에 있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때로는 하나님이 정말 계신 것인가 의구심이 들 정도로 나의 삶이 고단하고 힘들 때가 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다면,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의 삶을 책임지고 인도하고 계시다면, 나의 인생이 왜 이것 밖에 되지 않는 것인가 질문한 적도 있었다. 특별히 미국에서의 삶 10년은 정말 쉽지 않은 것이었다. 하지만 뒤돌아 보았을 때에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 아래 있었고 나에게 꼭 필요한 것이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즉 전도자의 말과 같이 이 모든 지혜의 근원은 하나님을 경외함에 있고,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기억하게 하였다.
“전도서를 읽는 독자들이 전도서가 회의주의를 주입시키려는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을 인정하는 삶이 가장 의미있고 보람 있는 삶임을 강조하기 위하여 이 부분을 기록하였음을 이해한다. 특히 13절에서는 사람의 본분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라는 지혜의 목적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 pp.174
전도서 11장과 12장에 이르러 전도자는 지금까지 이야기했던 모든 내용을 정리하고 결론을 내리며, 결국 인간이 믿고 따르고 원하는 것은 무의미함을 이야기 한다. 그리고 다시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함에서 나오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로운 삶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기존에 성경을 읽으며 지혜 문학들은 단순히 인간이 지켜야 할 도덕적 교훈들만을 전달하기 위한 성경의 한 부분으로 이해하며 읽었지만, 이번 지혜문학 과목을 수강하면서, 그리고 “삶의 의미를 찾아서”를 읽으며 그 안에 숨겨져 있는 기독교인으로써 살아가고 쫓아가야할 방향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단순히 세상에서 인정 받고, 자신을 높이기 위한 지혜는 진정한 지혜가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참된 지혜란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며 오직 그분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을 복되고 가치 있게 살아낼 수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