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을 가지고 뛰어들어야 합니다.
- pastortkim
- May 12, 2016
- 4 min read
믿음을 가지고 뛰어들어야 합니다.
야고보서 2장 14-26절
지금의 아내와 결혼 하기 전 함께 데이트를 즐길 때였습니다.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멋진 풍경을 보고 근사한 레스토랑에 가서 맛있는 저녁을 먹었습니다. 또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으며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은 물론이고, 아직 집에 돌아가려면 시간이 한참 남았는데도 다음 만날 날과 무엇을 할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행복해 했습니다. 여러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그 시간이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이겠습니까. 내가 사랑하는 여자가 나를 보고 웃으며 내가 하는 말에 반응하고 행복해 할 때, 그리고 그 사람의 한마디 한마디가 나를 위로하고 일으켜 세울 때 말하지 않아도 ‘아 내가 정말 이 사람을 사랑하고 있구나! 아, 내가 정말 이 사람에게 사랑 받고 있구나!’ 라고 느낄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녀가 헤어지기 전 집 앞에서, 혹은 집에 들어가서 전화를 하면서 꼭 제게 확인을 합니다. ‘자기 나 사랑해? 얼만큼 사랑해?’ 그럼 저는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합니다. 오늘 하루 종일 나와 데이트 하고 그 아름다운 시간을 보내면서 이 사람은 내가 자기를 사랑하는 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던 것인가. 여러분 제가 여기서 어떻게 대답하는 것이 맞겠습니까? 당신은 도대체 오늘 하루 종일 나와 무슨 대화를 나누고 어떤 감정을 교환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거야?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지 안사랑하는지 모르겠어? 라고 대답하는 것이 맞겠습니까 아니면 하늘만큼 바다만큼 우주만큼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이 맞겠습니까? 때로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이지만 우리 입 밖으로 꺼내야만 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고, 꼭 말로 하지 않아도, 꼭 행동으로 표현하지 않아도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고 그런 사람이니까 괜찮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은 반드시 오해를 만들어 내곤 합니다.
우리의 신앙에서도 동일한 문제가 있습니다. 내가 믿으면 되는 것 아닙니까. 내가 마음 속으로 예수 믿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하면서 살면 되는 것 아닙니까. 꼭 소리를 지르면서 기도해야 하고, 손을 들고 뛰면서 찬양해야 하고, 교회 나와서 식당 봉사 청소 봉사 해 가면서 신앙 생활해야 믿는 것입니까. 꼭 교회 나와서 뭔가 하지 않아도 내가 마음 속으로 믿으면 그만 아닙니까.
함께 14절 말씀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성경은, 진짜 믿음은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라고 우리에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내가 믿음이 있다고 떠들어대도 그것만으로는 결코 충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15-16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성경은 또 우리에게, 진짜 믿음은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라고 이야기 합니다. 굶고 있는, 추위에 떨고 있는 사람을 보면서 그저 ‘아, 저 사람 정말 안타깝다, 불쌍하다, 누군가 도와주겠지’ 라고 생각하고 지나가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한국이 제대로 된 교육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전쟁 이후에 수 많은 사람들이 가난으로 허덕거리고 있을 때, 해외에 있던 선교사들은 이 작고 가난한 나라를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만약 그들이 한국을 보며 저 나라는 참 불쌍한 나라구나, 누군가가 가서 도와주면 참 좋을텐데 라고 생각과 느끼는 것만으로 그쳤다면, 어쩌면 예배하는 우리들은 지금 이 자리에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들이 젊은 나이에 누릴 수 있는 물질과 명예와 사랑하는 사람들과 자신의 꿈들을 내려놓고 육적으로, 영적으로 굶어 죽어가는 대한민국으로 가는 배에 올라탔을 때 한국 땅에는 지금 전 세계에 선교사를 가장 많이 보낸 나라들 중 손에 꼽히는 나라로 성장할 수 있는 작은 씨앗이 심기워진 것입니다.
예수님을 생각해 보십시오. 제자들에게 배신 당하고, 믿었던 사람들에게 조롱과 멸시를 받으면서도 끝까지 십자가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채찍과 창이 찔려 살이 떨어져 나가고 피가 물처럼 흘러 내릴 때에도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것을 포기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도대체 왜 이 짓을 해야 하는가, 저들의 죄가 나와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차라리 이 인간들을 모두 쓸어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만드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라고 불평 불만하는 것이 아니라, 묵묵히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믿음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영적으로 타락한 우리를 보며 ‘참 안타깝네, 근데 뭐 어쩔 수 없지.’ 라며 돌아서 버렸다면, 우리는 여전히 죄의 문제에서 해결되지 못한채 죽음 가운데 거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고난이 우리를 살린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씻어 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과 느낌만으로 믿음을 보인 것이 아니라 순종으로, 삶으로 그 믿음을 행하셨습니다.
19-20절을 읽어보겠습니다. 귀신들도 믿고 떤다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럼 귀신들도 믿음이 충만한 것입니까? 그것으로 인해 귀신들도 구원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 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100세에 첫 아이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삭을 바치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사를 드리려면 그를 죽여야 합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죽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 아들을 바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을 보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믿음이 의롭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의 말만으로 하나님께서 그의 믿음을 인정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가 이삭을 바치려고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 안에 믿음이 없다면 이 자리에 나아올 수 없습니다. 교회에 처음 나왔을지라도,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큰 믿음이 여러분 안에 있습니다. 하지만 나아 온 믿음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제 내가 하나님 앞에 더 가까이 나아가고, 더 깊이 알아가겠다고 고백 할 수 있는 용기와 행함이 있을 수 있느냐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이성과 상식으로 지금 있는 배 안에서 한 발만 밖으로 꺼내 놓을 수 있습니다. 믿음과 이성의 경계선에서 내가 원하고 필요한 것을 섞어가며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안에 더 큰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려면 그것으로 멈춰서는 안됩니다. 때로는 그 믿음을 가슴에 품고 배 밖으로 뛰어 나가야 할 순간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배 밖은 얼마나 깊은 바다인지, 그 물이 얼마나 차가운지 가늠하기도 어려울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라면 나의 행동으로, 삶으로 도전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믿음으로 인한 행함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소원합니다. 또 그 행함을 통하여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 앞에 더 큰 인정을 받고, 사람들에게도 단순히 말로만 그치는 신앙인이 아닌, 정말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예수 믿는 사람의 본을 보이시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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