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주 과제물
- pastortkim
- May 12, 2016
- 4 min read
BS325 학부
성서해석
Hermeneutics
WMU empowers people
through transformational biblical education
to serve the church and impact the world for Christ.
World Mission University
Distance Education
5주 과제물
복음서는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서의 내용이 일반 역사적 기록과 다른 점(들)이 있다면 그것(들)은 무엇입니까?
막 10:17-18 과 마. 19:16-17절 비교
막10:17-18 – “17 예수께서 길 가실쌔 한 사람이 달려와서 끓어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오리까 1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마19:16-17 – “16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가로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7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켜라.”
마태가 마가와 다르게 기술한 것은 문제의 핵심을 간단히 전달하기 위함이다.
부자 관원의 문제가 계명의 핵심인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어긴 것이란 것을 전달하기 위해서 다르게 진술한 것이다.
즉, 마가의 실수를 마태가 바로 잡은 것이 아니다.
결론적으로, 복음서의 저자들은 역사가인 동시에 신학자들이다. 그들은 사실들을 회고하고 있지만, 또한 우리들이 믿음을 갖도록 그것들을 해석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권위있게 가르치셨던 이유를 설명하십시오
예수님의 가르침이 권세 있는 이유는 그의 가르침의 독특한 방법 때문이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권세 있는 이유는 메시지의 본질 때문이었다.
성경의 계명을 느슨하게 하는 바리새인들의 해석을 단단히 조여매셨다. – 이것은 구원에 대한 ‘율법주의’를 배제하는 것이다.
인간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폐지하는 바리새인들의 해석을 책망하셨다.
산상 수훈에서 잘 나타난다.
마5:20 –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5:48 –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구원에 도달할 수 없다라는 것을 가르치신다.
예수님은 자신의 도덕적인 노력으로 구원에 들어가는 것을 돕고 있다라는 율법주의를 주님께서는 배격하신다.
예수님의 가르치심은 종말론적 관점에서 해석해야 한다.
산상수훈을 종말론적 관점에서 해석해야 한다.
막1:14 – 때가 찼고 하나님이ㅡ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눅4:14-21
마12:28 –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요한복음은 미래종말론뿐만 아니라 실현된 종말론을 강조한다.
복음서에 나오는 비유 한 개를 선택하여 신학적 의의를 설명해 보시오.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 대한 제자들의 질문에 대한 응답으로, 예수께서는 복음서에 기록된 가장 난해한 말씀 중 하나로 손 꼽히는 말씀을 하셨다: “하나님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이는 저희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막4:11-12, 사6:9-10 인용). 예수께서는 자신의 제자 무리에 속하지 않은 자들에게 비유를 말하시는 목적이 이사야의 외침 뒤에 깔린 목적과 똑같은 (응징의) 목적, 즉 청중의 불신을 더욱 굳게 하는 것이라고 말하시는 듯 하다.
많은 성경 연구생들은 이 언급이 상당히 납득하기 어려운 것임을 발견한다. 한 가지 이유로는 그것이 잃은 자들을 찾고 구원하시려는 예수의 열망과 사명에 맞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사야를 보내어 그의 사역의 실패를 보증해 줄 일을 행하게 하시고 또 말하게 하심이 납득될 수 없는 일인 것처럼, 예수께서 자신의 복음 전파를 의도적으로 망치게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혹자는 주장한다. 그래서 예수 말씀의 명백한 의미를 순화시키거나 심지어 교묘히 피하려는 노력들이 있었다.
심지어 이사야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경우에도 그 말씀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이 이사야의 전체 사역이 그 말 그대로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을 암시하지 않음을 주목하는 것은 중요하다. 이사야 선지자가 말한 것 중 많은 것은 다른 기능과 목적을 가졌었다. 이와 유사하게, 우리는 마가복음 4:11-12의 말씀이 예수의 비유 사용의 유일한 이유라고 추정해서는 안된다. 이 논술 부분의 시작에서 이미 언급된 다른 가능한 이유들 – 단순성, 구체성 등 – 은 예수이ㅡ 사명의 더 넓은 상황 안에서 이해된다면 여전히 유효하다.
복음서에 나오는 비유를 한 가지 선택하여 주석적 원리 4개를 적용해 보십시오.
비유가 말하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진리를 확정하라. 이 원리는 비유 해석의 황금율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데, 그것은 비유 해석을 연구하는 학자들 대부분이 거듭 강조하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비유는 오직 한 가지의 유비적 초점을 갖는다”라고 도드는 쓰고 있다. 다른 이들도 이 원리를 지적한다. “비유를 사방으로 헤매게 만들지 말라.” 비유와 알레고리가 다른 점은 알레고리는 그 이야기의 대부분의 요소들이 의미를 갖는다는데 있다, 사실상 어떤 비유들은 조금 복잡하여 이런 면에서 알레고리에 가깝게 보인다. 그러나 일반적 원리로서 우리는 비유에 있어 단 한가지의 주제만을 찾아야 한다. 비유는 진리가 전달되는 통로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필요한 주제를 전달하기 위해, 주제의 뜻과는 연관이 없으나 비유를 치장하기 위해 사용되는 부가적 액세서리들이 있게 마련이다. 이 부가적 액세서리에 어떤 의미를 두고 해석하게 될 때, 비유적 가르침이 내포하고 있는 위험에 빠지게 된다.
비유는 어느만큼이 주님에 의해 해석되었는가를 확정하라.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말씀하시고 난 후에, 주님은 그것을 다시 풀어 주셨다. 원수가 와서 곡식 심은 밭에 가라지를 뿌린 비유를 주님은 나중에 그 집에서 해석해 주셨다. 또 열 처녀의 비유를 시작하시면서 주님은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고 말씀하심으로써 비유의 주제를 밝히셨다. 이런 사례들을 통해 우리는 비유의 의미에 대한 그리스도의 확정적 해석의 예를 발견함으로써 해석되지 않은 비유들에 적용할 원리들을 배우게 된다.
비유의 주제에 관해 비유가 놓인 그 문맥에 어떤 실마리가 있는지를 확정하라. 여기서 문맥이란 비유 앞뒤에 나오는 본문들이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잃어버린 양, 잃어버린 동전 그리고 탕자의 비유는 그 좋은 예이다. 여기서 문맥이 제공하는 해석적 실마리는 이장의 첫번째와 두번째 구절에 담겨 있다.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원망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따라서 뒤이어 나오는 비유들은 주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더불어 음식을 먹는 것에 대한 정당화라고 말할 수 있다. 즉, 목자, 여자 그리고 아버지는 모두 사랑의 태도, 용서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원을 나타내고, 잃어버린 양, 잃어버린 동전 그리고 탕자는 모두 주의 곁에 모인 세리와 죄인들을 대표하고 있다. 망대와 왕의 비유는 문맥상 제자도의 비유이지 구원에 대한 것이 아니다.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를 마치면서 누가는 이렇게 덧붙인다.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 따라서 이 비유의 초점은 바리새인들을 향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비교의 원칙 – 가능하다면, 구약과의 연관을 찾아 비교해 보라. 또 공관복음에서 중복되는 비유들을 서로 비교해 보라. 주님이나 또 당시의 청중들은 모두 구약의 내용에 익숙해 있었다. 우리는 반드시 비유가 갖고 있는 구약과의 어떤 연관을 예민하게 잘 살펴야 한다. 도드는 포도원, 무화과나무, 추수 그리고 잔치 등은 구약과 분명한 연관을 세밀히 살펴야 한다고 강조한다. 더 나아가, 해석자는 반드시 공관 복음서를 가까이 두고, 비유가 두 복음서 이상에서 나올 경우 그 하나하나를 연구해야 한다. 그는 공통점과 차이점, 병행과 동의어들을 잘 살펴야 한다. 참된 해석은 바로 이런 비교 연구에서 나온다.
복음서에 나오는 비유들 중에서 교리를 가르치는 비유를 하나 찾아서 교리를 말해 보십시오.
천년 왕국의 문제에 대한 최근의 논쟁들을 실상 몇 개의 비유 해석들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다. 대체적으로 무천년주의자들과 후천년주의자들은 어떤 비유들을 낙관적으로 해석하는데 비해, 전천년주의자나 세대주의자들은 같은 비유들을 비관적으로 본다. 예컨대, 겨자씨가 나무처럼 성장하는 것이나 누룩이 온 덩이에 번지는 것을 전자는 기독교의 성장과 번성으로 해석하지만, 후자는 교회의 타락으로 해석한다. 더 나아가, 어떤 전천년주의 해석자들은 진주를 교회로, 보물을 이스라엘로 해석하는 반면 이전의 해석자들은, 이 비유들을 사람이 구세주를 발견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으로 해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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